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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신드롬 인기 현상 분석

ThinkTank 2019. 12. 6. 13:37

펭수는 누구인가?

펭수는 2019년 EBS에서 제작한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으로 남극에서 온 10살짜리 펭귄이다. '자이언트 펭TV'는 평일 저녁 어린이 예능인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의 한 코너였으나, 펭수의 인기에 힘입어 '자이언트 펭TV'를 별도 프로그램으로 독립되었다.

펭수

황제펭귄의 새끼와 유사한 외양을 하고 있으나 덩치는 어른 황제펭귄을 훌쩍 넘는 2m10cm의 거대한 펭귄이다. 이름의 뜻은 남극 '펭'에 빼어날 '수'(秀)라고 한다. 펭수는 현재 EBS 연습생 신분이며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펭수의 특기는 요들송이다. 남극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스위스를 경유하는 비행기라서 스위스에서 요들송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펭수는 스위스까지만 비행기타고 거기서부터 헤엄쳐왔다고 한다.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와는 달리 취향이 성숙하다. 좋아하는 소설은 삼국지, 좋아하는 노래는 거북이의 '비행기', 좋아하는 음식은 국밥과 빠다코코넛이라고 한다. 

펭수신드롬의 원인

EBS 프로그램이자 유튜브 채널인 자이언트 펭TV는 등장한 지 겨우 8개월만에 유튜브 구독자 100만명(11월 28일 기준)을 달성했다. 또한, 타 방송의 라디오,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매체간 경계를 허물고 있으며, 펭수를 섭외하기 위해 각종 기업은 물론 공공기관까지도 경쟁적으로 나서는 모습에서 펭수의 인기를 느낄 수 있다. 

 

자이언트 펭TV 댓글 캡쳐

펭수는 주 시청자가 10대 이하인 교육방송의 캐릭터지만 인기는 2030세대에서 두르러지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2030 세대는 펭수에 열광할까?

첫 번째 이유는 FUN하기 때문이다. 최근 짧은 시간에 가벼운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몇 시간이 소요되는 영화, 드라마보다는 10분 내외로 짧고 간결한 콘텐츠를 선호한다. 시간은 짧지만 재미와 유머는 가득 차 있다. 

펭수는 뛰어난 유머감각을 소유하고 있다. 최신 유행의 인터넷 밈(internet meme, 유행어, 유행현상)을 사용하는데 탁월하고 라디오 방송에서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라이브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순발력까지 갖고 있다. ‘윙크를 해 달라’는 팬의 짓궂은 요청에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린다든가, ‘늘 쓰고 다니는 헤드폰의 브랜드는 뭐냐’는 엉뚱한 질문에 “김명중”(EBS 사장)이라고 답한다. ‘회사 사장님 성함을 함부로 말할 수 있냐’는 지적에는 ‘사장님이랑 편해야지 회사도 잘되는 겁니다’라는 재치 넘치는 답을 내놓는다. 다큐멘터리나 강의처럼 딱딱하고 정숙해야 할 것만 같은 EBS 출신이기에 펭수가 보여주는 예능감은 신선한 ‘갭(차이)’으로 느껴진다(출처: “대한민국은 펭하!” 경계를 넘나드는 펭귄, 펭수앓이 왜?, 경향신문, 2019.11.8).

두 번째 이유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에서 열린 펭수의 사인회에서 성인 여성이 펭수를 보자마자 감정이 북받쳐 우는 장면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해당 영상에는 “펭수 고생을 아는 어른이의 마음+삶이 지치고 힘든 때에 영상보며 잠시나마 웃게되는 펭수를 직접 영접한 팬의 마음=눈물 ㅜㅜㅜ”, “어린아이가 어른이 된거니ᄁᆞ요, 인내하고 견디는 일에 조금 익숙해져 있을 뿐”이라는 댓글이 달려고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관련 영상 댓글 캡쳐

펭수는 누구를 만나든 거침없이 일침을 날리며 청량감을 선사하지만 그의 주요 메시지는 ‘공감과 힐링’이다.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 특히 힘듦을 호소하는 이들에게는 ‘힐러’ 역을 자처한다. 애초 펭수는 “힘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 안 힘든 분들에게도 웃음을 주고 싶다”며 자신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자이언트 펭TV’ 타이틀곡에는 “남극에선 혼자였지. 남과 다른 덩치… 원래 그래, 특별하면 외로운 별이 되지”라는 가사가 있다. 펭수는 과거 따돌림을 겪은 상처를 갖고 있다. 그는 “외로운 별들이 모이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별들이 되는 거 같다. 다 같이 사는 이 지구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이해하고 배려하는 별이 된다면 다들 행복해지지 않을까?”라며 상처받은 마음들을 어루만지고 있다(출처: “대한민국은 펭하!” 경계를 넘나드는 펭귄, 펭수앓이 왜?, 경향신문, 2019.11.8)

펭수는 지난 10월 2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트레스 받고, 지친 사람들이 펭수의 위로를 받고 싶어해요. 따뜻한 위로를 부탁한다’는 질문을 받자, “이게 진짜 어려운 일이에요. 제가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응원을 해주는 거지 위로는 아니에요. 힘든데 힘내라, 이것도 어려운 일이거든요.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전 응원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힘내라는 말보다 사랑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펭러뷰 ♡”라고 답변했다(출처: 꼰대 깨부수는 병맛 센스···'어른들의 뽀로로' 펭수 만났다, 중앙일보, 2019.10.26)
  
삶에 지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힘내라는 뻔한 대답이 아니다. 힘내라는 말을 들어도 힘도 나지 않을뿐더러 힘내라는 말이 진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답변을 위한 답변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펭수는 달랐다. 펭수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펭수는 솔직한 입담과 거침없는 발언으로 모범적, 교훈적, 권선징악적인 기존 캐릭터와 다르다. 위계질서에 저항하고 호불호의 속내를 솔직히 드러내는 캐릭터로 조직생활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대리만족의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

펭수는 캐릭터의 밝은 모습만 과장하지도 않고 도덕적 교훈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심지어 펭수는 요들송에, 랩, 비트박스, 비보이 댄스까지 소화하는 방식으로 20~30대가 좋아하는 예능 감각도 자랑한다. 요컨대 펭수는 기존의 펭귄 캐릭터와 정반대로 당당하게 자기의사를 표현할 줄 알고 위계와 틀을 깨는 반전의 성격이 매력 포인트라고 요약할 수 있다. 

20~30대 젊은 사회 초년병들이 더욱 펭수에 열광하는 데는 사회 문화적 배경과 원인이 있다. 이 세대는 88만원 세대, N포 세대라는 용어로 대표되고 낮은 취업률로 사회 진출 후 취업과정에서 수없는 거절과 좌절의 경험을 가진 세대다. 그와 함께 이들은 수직 위계화된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없는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신조어)의 억압된 심리를 내재화했다. 이런 심리는 수없이 갑질과 부당한 일을 당하지만 어차피 문제제기를 해도 바꿀 수 없다는 좌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런 억눌린 감정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우울증,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과적 문제를 낳는다. 이 때 자신들과 달리 ‘할 말은 하는’ 펭수에 감정이입함으로써 이들은 심리적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출처: [미디어 분석] 인기 폭발 ‘펭수’ 뒤, 문화현상의 의미 : 생활 민주주의의 부재, 교수신문, 2019.11.24).

 

펭수는 펭수다

펭수신드롬의 원인을 다양하게 분석해봤지만, 펭수가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동심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펭수를 볼 때만큼은 우리는 어른이지만 어린이다. 어릴 적 뚝딱이와 뿡뿡이를 보며 울고 웃었던 과거의 어린이처럼 펭수를 보며 울고 웃는 지금의 어린이로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 견디는 일에 익숙해진 어린이일 뿐이다’는 말이 우리에게 와 닿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펭수를 보며 과거 산타할아버지가 존재를 믿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래서 펭수는 연기자가 거대한 인형옷을 입고 연기하는 캐릭터지만 아무도 그 실체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마치 아이들이 캐릭터 자체를 살아 있는 실체로 인식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펭수를 실존하는 펭귄으로 인식한다. 누군가가 펭수의 실체를 궁금해 하는 댓글을 쓰면, ‘펭수는 펭수다!’ ‘펭수에게 별도의 실체는 없다’ ‘펭수의 속을 궁금해 하지 말라’라면서 펭수 판타지를 지키려 한다.('펭수 신드롬'의 의미 좀 알아주세요 부장님, 시서저널, 2019.11.9)

그러나 펭수의 인기가 더 많아질수록 연기자가 누구냐는 궁금증이 커질 것이다.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펭수의 연기자로 지목된 인물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펭수는 펭수로 남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삭막한 삶에 동심을 느끼게 해준 펭수는 사람이 아니라 남극에서 온 펭귄 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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